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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바꾼 가장 강력한 사건 2가지: 코로나19와 육아

Brava Coreana 2024. 2. 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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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굉장히 많아진 요즘. 자기성찰까진 아니다. 이탈리아에 오고, 코로나19를 마주하고,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고, 육아를 하면서 잊고 지내던 나를 다시 만나는 시간이다. 그리고 정말이지 잊고 있던 나를 발견했다.

 

나를 바꾼 사건: 코로나19와 육아

 

 

나를 바꾼 가장 강력한 사건은 코로나19와 육아다. 두바이에서 하던 일을 그만두고 이탈리아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코로나19가 터졌다. 이탈리아에는 락다운이 내려졌었고 마트와 약국을 제외하고는 외출이 금지됐다. 처음엔 괜찮았지만 나는 점점 우울해졌다. 우을증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지만 우울감은 확실히 느꼈다. 코로나19 라는 이례적인 판데믹이 우리를 덮쳤을 때, 그 누구도 이 상황을 어떻게 해쳐나가야 할 지 몰랐다. 정해진 매뉴얼도 없었다. 이게 뭔지 모르니 약도 없었다. 어떤 치료제를 써야 할 지도 몰랐다.

 

이탈리아에는 락다운이 내려졌었고 마트와 약국을 제외하고는 외출이 금지됐다. 의료진인 남편은 자원 봉사를 나갔다. 주 7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ICU에서 환자들을 돌봤다.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나에게 티내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남편은 집에서 잠을 조금이라도 자기는 개뿔, 집에 오면 허겁지겁 멍한 눈으로 밥을 먹고는 컴퓨터 앞에 앉아 밀린 페이퍼 워크와 코로나19에 대한 분석을 하기에 바빴다. 정말 죽지 않을 정도로만 자면서 그 상황들을 버텨냈고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애썼다.

 

그런 그를 조금이라도 돕고 싶었다. 그 수많은 페이퍼워크를 조금이라도 자동화하는데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내가 데이터를 분석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러면 남편은 한 시간이라도 더 잘 수 있었다. 그렇게 코딩을 시작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나는 다짜고짜 구글과 유튜브의 힘을 빌려 '파이썬'이라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다. 페이퍼워크 자동화 하는 방법이 있는데 파이썬을 쓰면 된다고 하길래 파이썬을 시작했다. 코딩에는 문법이 있다. 정해진 규칙대로 써야 프로그램이 작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문법부터 배우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았다. 그래서 다짜고짜 눈치껏 구글에서 열심히 검색해 짜깁기 하는 방식으로 덤볐다.

 

당연히 코드는 엉망진창이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한 일주일 머리를 싸매니 됐다!? 프로그램이 작동한다!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파이썬이라는 건 들어보기만 했었는데 내가 그걸로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남편을 도와줄 수 있어 기쁘기도 했는데 무엇보다 성취감이 엄청났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나는 개발 공부라는 것을 시작했다.

 

약 1년 정도 개발 공부에 몰두했다. 내 인생에서 그 1년 만큼 재밌었던 시간이 또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신나게 보냈다. 파워 외향형이라 밖으로만 나돌던 내가 매일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 밤을 새곤 했다. 코드를 작성하는 프로그램 중에 vscode 라는게 있다. 일종의 메모장 같은 건데 개발자들이 코드를 짜기 편하게 좀 더 이것저것 갖춰 둔 프로그램이다. 이 vscode에 내가 실제로 코드를 하루에 몇시간동안 작성했냐를 자동으로 기록해주는 확장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리고 그 기록을 기반으로 순위가 매겨진다. 경쟁자는 그 확장 프로그램을 쓰는 전 세계인이 다. 거기서 전세계 3등까지 해봤다. 아무리 못해도 30위 안에는 계속 들었다. 어차피 당시엔 아기도 없었고 집 밖으로도 못나가니 할 게 그거 뿐이었다. 그 정도로 몰두해서 1년 넘는 시간동안 개발 공부를 했다.

홈페이지들도 만들고 서버도 구축해보고... 내가 생각한 것들을 내가 직접 코드를 짜서 만들어 보는게 정말 재밌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개발자로 전직을 해야 겠다고 마음을 먹고 이력서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한달? 

이럴수가. 임신을 했다.

 

임신 자체의 설렘은 있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어렵사리 갖게 된 내 꿈을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개발자가 되어 자리를 좀 잡고 임신을 했으면 더 좋았을텐데. 그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당시 개발자로 취업하게 되면 비전공자 늦깎이 개발자였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더 밤낮으로 열심히 공부해야 했다. 그러니까 아기가 있으면 현실적으로,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처지였다. 결국 개발자란 직업은 이뤄보지 못한 채 미련으로만 남기고 포기해야 했다.

 

 

그때부터 였던 것 같다. 임신과 육아의 탓도 있지만 언제나 머리가 좀 멍했다. 그리고 지켜야 할 것들이 생기니 두려움이 커졌다. 옛날에는 아무거나 닥치는대로 그냥 해보자! 였는데 이제는 '과연 할 수 있을까? 안될 것 같은데? 해도 될까? 안될 것 같은데?' 이런 생각만 자꾸 들었다. 하루종일 휴대폰만 내내 만지다 잠에 든 날도 엄청 많았다. 아기가 태어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육아가 유독 힘든 날은 더 그랬다.

 

그러다 아기가 드디어 돌이 지나고 말이 좀 통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편해졌다. 이제 곧 아기 어린이집 보내고 나도 내 할일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의욕이 넘쳤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지 머릿속으로 많이 그렸다. 그런데, 이게 웬걸? 둘째를 임신했다. 와... 둘째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는 아니었다. 설상 가상으로 어린이집은 자리가 없단다. 첫째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려면 25개월까지 기다려야 한단다.

 

지금은 지금 출산을 두 달 남겨둔 거의 만삭 엄마가 되었다. 17개월 아기를 집에서 보육하고 있다. 리모트로 일도 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다. 나는 앞으로 최소 2년 동안은 물리적, 시간적, 공간적 제한과 마주해야 한다. 그래서 그걸 깨부시고 부를 축적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로 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 하지만 실제로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서 못하거나, 실행력이 부족한 사람들을 위해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차근차근 데이터를 쌓아나가는 중이다. 단순히 내가 성공해야지 라고 생각할 때는 의욕이 불타오르지 않았는데, 내가 이걸로 남들한테 도움을 주고 말거라고 생각하니 의욕이 불타오른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걸 하면 꿈에서도 그 좋아하는 걸 한다. 요즘 그렇다. 꿈에서도 책을 읽고, 분석을 하고 공부를 한다. 승무원 때 쓴 블로그를 다시 봤다. 지금은 비공개처리 해놔서 나만 볼 수 있다. 내가 승무원 준비생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쓴 블로그 포스팅들이 있는데 어떤 글은 댓글이 250개나 달려있더라. 그리고 내 도움 덕분에 합격했단 댓글들도 많았다. 그걸 오늘 발견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나 다른 사람들 도와주는거 생각보다 더 좋아하네. 

 

훗날, 다시 한 번 더 그 짜릿함을 맛보는 날이 오길 바라며 오늘도 기초 공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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