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연달 열이틀

[이탈리아어] 듣기가 들리기 시작한 시점

Brava Coreana 2020. 7. 3. 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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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처음으로, 아무런 노력없이, 이탈리아어를 알아 들었던 순간이 있다.

 

코비드가 한창 유난이던 때였다. 텔레비전을 틀면 어김없이 코비드로 뉴스가 쏟아지고 온통 걱정과 우려가 쏟아지던, 그런 때였다. 지금은 안 보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밤마다 내가 좋아하는 방송을 보곤 했었다. 물론 단 한마디도 못 알아 들었었지만 그냥 이탈리아 사람들이 예능이 아닌 일반 시사교양처럼 보이는 채널에서 우스꽝 스럽게 분장도 하고, 마술도 보여주고, 자기 할 말 다하는게 신기해서 보곤 했었다. 프로그램 이름이 기억이 안나네... 늘 밤 9시에서 10시 정도에 틀면 나오는 프로그램인데, 그날도 어김없이 코비드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졌다.

 

나는 어차피 못 알아들으니 틀어놓고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며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었다. 패널이었던 의사 선생님이 코비드에 대한 통계(나이대, 성별로 분류한 코비드 취약층)를 이야기 하는데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하다가 갑자기 그 의사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아주 명확하게 들렸다.

 

순간 벙 쪘다.

들으려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도 이탈리아어를 알아 들은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순간 벙 쪄서 옆에서 텔레비전을 보던 남자친구에게 "나 방금 알아들었어..?????!?!?!" 하며 자랑 아닌 자랑을 했더랬다.

물론 그때 뿐이었고, 그 다음에 뭐라고 하셨는지는 못 알아들었지만 그 첫 순간은 잊지 못할 순간이다.

 

꾸준히 하니까 빛을 보는구나, 되는구나. 

그 노력의 댓가를 맛 본 순간이었다.

 

저번주에는 처음으로 이탈리아어로 전화통화를 해봤다. 그래봤자 식당 예약하는 거라 아주 간단한 대화이긴 했지만 이탈리아어로 한 첫 통화라.. 무척 긴장이 되었다. 자잘한 실수는 했지만 그래도 예약은 성공했고 뿌듯했다. 내가 잘 모르는 언어로 통화를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긴장된다는 걸 아니까.

밖에서 내가 뭔가 이탈리아어로 물어볼 때 영어로 답변이 돌아오는 것도 횟수가 줄었다. 예전에 내가 이탈리아어로 질문을 하면 100% 영어로 답변이 돌아왔는데 이제는 반 정도로 줄었다 하하하

한번은 점원에게 Do you speak English? 라는 질문을 받았는데(이런 질문 받을 때마다 귀엽다 진짜), Yes, I do but.. preferisco parlare in itliano perché lo sto imparando 했더니 웃으면서 알겠다며 이탈리아어로 응대해줬다. 예전엔 어차피 못알아들어서 Yes, please 하고 영어로만 대화하곤 했었다. 그때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

 

물론 이제 1년이 남짓 되어가는 이탈리아 생활에서 그정도는 말하는게 당연한거 아니냐 싶지만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혼자 보내고(a.k.a. 집순이) 남자친구와도 영어로 소통하며, 남자친구가 보는 영상, 책 등 모든 것들이 영어로만 되어 있기 때문에 간접적으로도 이탈리아어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이제 영상을 볼 때 어느정도는 무리없이 알아 듣는 것이 가능하다. 텔레비전이나 영화는 아직 시도를 안해봤지만 아직은 안들릴 것 같고... 유튜브나 틱톡의 짧거나, 쉬운 주제의 영상 정도는 자막없이 알아듣게 되었다. 

 

조금 더 들리니 더 재밌다.

서툴지만 대화에 낄 수도 있고, 사람들도 얼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이해하는 정도가 됐다. 아직 명확하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는 없지만 내가 목표한 3년 안에 C2 따기를 잘 하면 할 수도 있겠다 싶다. 어느정도 느니 더 잘하고 싶다.

 

 

좀 더 복잡한 문장을 구사하고 싶고, 그 복잡한 문장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말하고 싶다. 

이제 단어와 또 싸울 때가 되었다.단어 공부는 자꾸 하다 안하다를 반복해서 문제다. 읽기도 해야되는데 나도 모르게 손을 놓고 있었다. 다행히 1년 남짓을 함께 한 이탈리아어 선생님이 여름동안 읽을 책 목록을 정해주셨다. 우리 레벨에 맞는 걸로 추천해주셨다고 하니 이번 여름에 그 책들을 읽어보려 한다.

늘 반복해서 쓰는 이야기지만 읽기만큼 현재 나의 부족한 점을 채울 수 있는 다른 것은 없는 것 같다. 이제 휴대폰을 잠시 손에서 내려놓고.. 책을 붙잡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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