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9월이었나 10월이었나, 밀라노 꼬무네에서 이탈리아어 수업을 듣기 위해 시험을 봤다. A2 반 부터 들어도 된다길래 그것부터 들으려고 했더니 이미 수업이 꽉 차서 들을 수 없다고 A1 부터 듣는게 어떻겠냐고 추천해주셨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A1 부터 듣기를 정말 잘했다.
선생님도 너무 좋았고, 무엇보다 수업이 전반적으로 약 98% 이상 이탈리아어로만 진행되어서 A2부터 들었으면 엄청 고생했을 것 같다.
매 과정이 끝날 때마다 테스트가 있고 테스트에 통과해야 다음 레벨을 들을 수 있다. 뭐, 딱딱한 분위기는 아니고 그냥 다같이 마무리한다는 느낌이어서 테스트 통과 못한 친구들 중에서도 공부에 대한 열의가 있는 친구들은 선생님이 다음 레벨로 올려주기도 했다. 우리반 같은 경우는 다같이 A1 부터 시작해서 B1 까지 거의 빠지는 친구들 없이 함께 했다. 그 중에는 이미 이탈리아어를 꽤 하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스페인어, 프랑스어가 모국어인 친구들이고 이미 이탈리아에 좀 살았지만 문법적인 오류를 조금씩 하는 애들이라 A1 부터 듣는다고 했다. 말하는 거 보면 B2 도 충분히 커버 가능한 친구들인데 왜 굳이 A1부터 들었는지는 의문.
- A1 레벨에서는 당연히 이탈리아어를 전혀 못하는 친구들을 기준으로 수업이 진행되어 선생님이 영어도 간간히 쓰셨지만, 이미 이탈리아어를 꽤 하는 친구들과 함께 하려니 버겁긴 버거웠다. 그래도 버틴 보람이 있었다.
- A2 수업에서는 좀 더 들렸고, B1 수업에서는 좀 더 들렸다. 차츰차츰 귀가 트이는게 느껴지고, 애들 따라잡는다고 혼자 있을 때도 나름대로 공부하다보니 꽤 따라잡은 느낌이다. 아직 갈길이 멀긴 하지만 그래도 B1 합격 했으니 ㅠㅡㅠ 올해 목표는 이뤘다.
- 코로나가 터지고 B1 수업 같은 경우 온라인으로 진행 됐었다.
그 와중에 CILS 시험 날짜가 잡혔고 선생님이 시험을 보고 싶은 사람은 개인적으로 말해 달라길래 말씀을 드렸더니, 이번에 B1 보지 말고 그냥 내년 6월에 B2 보는게 어떻겠냐고 물으셨다. 이유인 즉슨, 우선 A2 시험까지는 50유로 정도로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인데 B1 부터는 100유로라서 가격이 꽤 나간다. 그리고 당시의 내가 B1 을 패스할 정도까지의 실력은 아니라고 판단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난 정말 내가 어디까지 왔나 보고 싶었다. 패스하고 싶지만 못하더라도 봐야겠다 싶어서 신청했다. 그때부터 문법 열심히 하고..(결국 알고보니 B2 레벨 문법을 준비했어서 이번 시험에서는 무용지물이긴 했지만) 듣기도 받아쓰기 하고.. 단어도 간간히 외우고.. 쓰기 공부도 조금씩 하면서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선에서 열심히 했다. 중간중간 게을러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거의 하루도 안 빼놓고 꾸준히 했다.
시험 자체는 이전 글에 쓴 후기에서도 볼 수 있지만, 좀 어려웠다. 솔직히 떨어질거라고 생각했음.
듣기부터 안들렸고 쓰기는 한번도 연습해본 적도, 생각해본 적도 없는 질문이 나왔고ㅋㅋㅋㅋㅋ
컨디션이 그닥 좋지 않은 상태였어서 읽기도 같은 줄을 반복해서 읽고....
전반적으로 불합격일거라고 생각했다. 말하기 빼고는 다 다시 봐야겠네 하며... 그냥 선생님 말대로 내년 6월 B2 준비나 할걸 그랬나 싶었다. 말하기는 면접관이 대놓고 잘했다고 칭찬해주며 이정도면 무조건 패스지 라고 해줬기 때문에 걱정이 없었음.
CILS 는 시험 보고 3개월이 지나야 결과가 발표된다.
어차피 떨어졌다고 생각해서 까맣게 잊고 살다가 3개월정도가 지났을 무렵 문득 생각이 나서 확인해보니 "합격!"
과목당 11점을 넘으면 합격인데 무난하게 패스했다!! 말하기에서 제일 높은 점수를 받았고 듣기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듣기할 때 소리가 엄청 뭉개지는 바람에 거의 못들은 문제가 좀 있었는데 운좋게 그거 빼고는 거의 다 맞았나보다. 자리 탓인지 소리 탓인지 모르겠으나... 한국어도 잘 못알아듣는 마당에 턱걸이에 걸린 것도 없으니 감사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 이제 또 다시 8개월 꾸준히 달려서 내년 6월에는 B2를 볼 예정이다.
B1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이탈리아어 공부를 안하기도 했고 요즘엔 다른 공부하느라 바빠서 이번 12월 B2 는 좀 무리가 있을 것 같다.
어제부로 꼬무네에서 B2 수업을 시작했다. 일주일에 2회, 2시간씩.
사실 가서 크게 하는 것은 없다. 공부한 양으로만 따지면 내가 혼자 해낸 것들, 아이토키로 수업하며 얻은 것들이 훨씬 더 많다.ㅋㅋㅋ 문법이라던지 읽기라던지, 그 시간에 혼자 했거나 아이토키 수업 1번 더 들었으면 더 많은 양을 했을 것이다. 이유인 즉슨 내가 단체수업에서 참여도가 높은 편이 아니야..그냥 수업시간 내내 조용히 있는 아싸같은 애 한 명.
하지만 꼬무네 수업에서 분명 얻는게 있다. 2시간 내내 풀로 이탈리아어로 진행되는 수업에 참여하는 것 자체, 강제로 말하기 액티비티, 또 혼자 공부하면서 놓쳤던 부분, 이탈리아 문화, 에미레이트 퇴사 이후 오랜만에 만나는 다양한 국적들.. 다양한 곳에서 다양하게 얻는다. 특히 에미레이트에서와 다른 점은 다들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어 여러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이야기 나누는 것이 재밌고 흥미롭다.
+ 꼬무네 뿐 아니라 아이토키도 꾸준히 했는데 까놓고 말해서 시험 자체만으로 봤을 땐 아이토키로 공부한 게 훨씬 도움이 됐다ㅋㅋㅋㅋ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주제로 다양한 억양을 듣는 것, 그리고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에미레이트에서 배웠기 때문에 꼬무네도 간 것일 뿐. 그리고 쌤이 너무 좋아서ㅋㅋㅋㅋ
꼬무네 갈 시간도 여력도 없으신 분들은 아이토키라도 하시길 추천드린다. 제발 아이토키 하세요..ㅠㅠㅠㅠ 이 좋은 걸 나만 알기엔 너무 아까워... 비단 이탈리아어 뿐 아니라 다른 외국어 배우시는 분들도 진짜 강력하게 추천!!!! 화상수업의 이점을 최대한 누리시길... 참고로 다른 글에서도 여러번 언급했지만 난 아이토키를 내 돈 내고 꾸준히 해온 사람이다.
- 어제 첫 수업에서 자기소개를 했다. 나는 간단히 내 이름 정도만 말하고 지난 2-3개월동안 이탈리아어를 거의 말하지 않아서 벌써 많이 잊었다. 그래서 영어랑 이탈리아어 섞어 말할 수도 있어, 하지만 너네들이 도와줘 per favore! 했더니 다들 그럴수도 있지 하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줬다. 넘나 다행...
다행히 거의 모든 친구들이 영어를 할 줄 아는 것 같고, 이탈리아어도 나보다 훨씬 잘한다. 친구들이 꾸준히만 나와준다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고 나도 도움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고 싶다.
나의 제2외국어가 이탈리아어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어느새 이정도까지 온 걸 보면 대견하기도 하고 두바이 살 때 아랍어를 이렇게 배웠으면 어마어마 했겠지 란 아쉬움도 있다. (수강료가 너무 비싸서 안배우기로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걸 투자로 생각하지 않았던 게 한이 된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살 당시에는 두바이에서 스카이프를 막아놓는 바람에^^^^ 아이토키 수업을 할 수 없었다. IP를 우회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인터넷 자체가 매우 느려서 감당이 안됐음. 시도는 했었지만 너무 느린 인터넷 때문에 접었었다.)
또 다시 조금씩 달릴 시간이 돌아왔다.
Forz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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